두기봉 감독의 이름과 수백 발의 총알 발레 신을 겹쳐 떠올리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좀 의아해 보일지도 모른다. 등장인물들은 예의 그 비장한 표정으로 단 한 번도 웃지 않지만 그들이 벌이는 일들은 버스터 키튼의 시퀀스와 닮아 있다. 총 한발 쏘지 않는 두기봉의 영화를 상상하기는 힘들지만 두기봉 영화의 장르적 매혹은 여전하다. 바느질하고 참새를 키우며 흑백 사진 찍기가 취미인 케이는 홍콩의 전설적인 소매치기범이다. 어느 날 케이 일당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모의 여인이 접근해 온다. 그녀의 사연과 두 고수의 대결. 두기봉 감독은 어두운 갱스터의 세계에 낭만적인 캐릭터를 등장시켜 때로는 뮤지컬 같고 때로는 코미디 같은 영화를 뽑아냈다. 큰 이야기틀은 어디서 많이 보아온 관습적인 것들로 짜여져 있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시각적 설계와 디테일들은 기묘하고 독창적이다. 매우 극적이고 감각적이며 빠른 매 신들은 두기봉의 전작들에서 익히 보아왔던 스타일이지만 이 영화의 낙관적이고 유머러스한 기운은 같은 스타일조차 다르게 읽히게 한다. 특히 손끝에 살짝 묻어나는 혈흔만으로도 두기봉 영화의 장르적 매혹을 고스란히 재현해낸, 비 오는 밤거리의 마지막 대결 신이 인상적이다.